빈틈
종교는 도박이다 본문
칼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신의 저서 '헤겔의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일컬은 바 있다.
이는 종교의 해로운 측면을 단적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회경제적 모순으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종교가 현실도피적 창구가 되어
그들의 궁극적인 활로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내세'로 삼게 하고
실제 그들의 삶을 옥죄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되새기며 길을 걷다 문득 새로 지어 곧 '오픈'을 앞두고 있는 거대한 신축 교회건물 옆을 지나게 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큰 규모의 이 복층교회는 최신의 기법을 사용한 듯 세련된 면모가 가득하다.
이런 불경기에 세워 올렸기에 들인 자금의 규모를 나같은 서민은 차마 헤아리기도 어렵다.
한국의 교회는 동네마다 있는 편의점 보다도 이제 그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까마득한 시골 깡촌에도 편의점은 없어도 교회는 있으니까..
대도시의 시내 중심가에는 경쟁하듯 대기업의 프렌차이즈 매장이 넘치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교회다. 다른 종교들과 달리, 또 다른 나라의 교회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교회는 늘 목 좋은 자리에 들어서며
옆에 슈퍼가 있어도 경쟁 마트가 들어서듯, 교회가 있어도 또 하나가 들어선다.
한 동네에 교회가 있어도 저마다의 목사들은 자신의 교회를 나오라 목에 핏줄을 세우듯 전도한다.
마치 최근의 스마트폰 통신사 대리점의 경쟁을 보는 듯 하다.
이런 한국 교회를 보며, 유독 한국의 종교는 도박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로또복권마냥 합법화된 도박.
누구나 꿈꾸는 십시일반. 대한민국 국민 한명씩이 나에게 1000원씩 준다면 500억
사람들이 대박을 꿈꾸며 천원씩, 오천원씩 복권을 사듯
교인들은 천국을 꿈꾸며 천원씩, 만원씩 헌금이나 십일조를 한다.
현실에서 복권을 몇년씩 매주 긁어도 당첨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다 한다.
하지만 교인들은 똑같이 현실의 복록이 오지 않더라도 매주 반복해서 헌금을 한다.
이 경우엔 금액이 보통 더 크고, 더 성실하다.
더군다나 복권처럼 주변사람들이 어리석다 말리더라도 대책이 없다.
현실에 복록이 없다면 내세라도 천국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아무리 투자를 해도 나는 언제나 꽝이지만 정부와 주관은행은 돈을 벌듯
아무리 헌금을 해도 내 현실은 똑같지만, 교회와 목사는 돈을 번다.
복권은 계속 실패하면 한 동안 욕하며 멈추지만
헌금은 불행이 지속되더라도 자신의 헌금량과 기도의 부족한 탓이라 여기며 더욱 매진한다.
재밌는건 한국종교도 도박과 같이 타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 특유의 종교적 인맥 네트워크를 통해 영업을 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보탬을 하는 자들이 있다.
보통은 장로가 된다.
이들은 교회를 보조하며 자신의 영리를 취하다
보다 부귀해지면 더 많은 헌금을 하며 자신의 영향력 또한 같이 넓혀간다.
돈이 돈을 벌듯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장소를 제공하는 도박장은 늘 돈을 벌듯
이와 별개로 그러한 장이 되는 교회 또한 늘 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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