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21세기 자본 | 토마 피케티 본문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세 줄 요약
1. 자본주의의 시작 이래로 부의 불평등은 날로 커져갔는데(물론 더 이전의 역사에서도 컸지만 자료가 없어 통계를 낼 수 없음), 딱 한 번, 세계1,2차대전 시기과 그 이후 30년간만 불평등이 감소했고, 그 이유는 전쟁으로 인한 자본의 파괴와 기술성장, 누진적 소득세, 인플레이션 등의 이유였다.
2. 그러나 세계대전 이후 시장만능주의의 등장으로 각종 부자 세율이 다시 인하되고 이러한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등으로 인해 부유층의 자본성장율은 더욱 커진 반면, 사실상의 공통세금인 인두세(소득비율과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이 내야 하는 주민세, 자동차세 등등)의 폭은 나날히 커지면서 불평등이 다시금 과거처럼 심화되고 있는데, 더욱이 앞으로의 근미래에는 인구성장과 기술진보의 한계로 인해 그러한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3. 이에 대한 해법은 전후 약 70~90퍼센트까지 매겨졌다가 시장만능주의 이후 다시금 최고 30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누진적 소득세율의 인상과, 전세계적으로 10억 이상 순자산 보유자에게 1~2퍼센트 가량 과세하는 글로벌 자본세인데, 지금에 힘과 돈을 갖고 있는 저들이 과연 그에 동의할까? 더군다나 일반 민중들은 저마다 먹고 살기 바빠 이런 문제를 등한시하는 현상황에서? 그래서 나의 해법은 다소 유토피아적이며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우리 같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보자. 아니면 가까운 근미래에 우리는 끔찍한 세습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테니까.. 끝.
[의의] 탁상 앞 수학적 도식에 머물러 있는 현행 상아탑 경제학을 거슬러, 과거 전통이었던 정치경제학으로 되돌아가 현실적 분석과 목소리를 만들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고전적, 현대적 경제이론을 막라하며 그 장단을 취했다는 점, 뿐만 아니라 현실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동참할 수 있는 기조와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줬을 뿐만 아니라 그 움직임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 한국에 적용
1. 한국 또한 1945~1980년대까지 급속도로 성장했다. 전세계가 다 그랬고, 이는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뭐가 해도 똑같았고, 다들 나름 자기만 능력만큼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잘 살았다.
2. 한국 또한 1980년대 이후 불안정해진 국제경제의 영향으로 1990년대 IMF,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겪어오던 와중에 경제성장율이 떨어지면서 그 해법을 각종 부자감세, 대기업 규제완화, 민영화 등으로 부유층의 부가 날로 커져가는 반면, 이로 인한 부채를 줄이기 위해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인두세라 볼 수 있는 주민세, 자동차세, 주세, 담배값 등만 올리며 서민층의 부담은 날로 늘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참여정부 당시 18조 3천억원에 불과했던 적자성 채무가 이명박 정부에선 약 97조, 박근혜 정부에서는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과거 역사상 가장 부가 불평등했을 때의 불평등 지수 베타를 6~7 정도였고, 대공황과 세계대전 이후 그 격차가 줄었을 때가 2~3 정도였다고 하면, 지금의 한국은 7.5 정도로 일본, 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3. 이를 위해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6억 이상 주택 보유자에게 약 1%를 과세)를 추진했으나, 이는 부자 증세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세금폭탄'이라 언론몰이하며 반대된 마당에 부동산 뿐만 아니라 10억 이상 소유한 사람들의 자본 전체에 대해 1~2%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하면 새누리당은 이번엔 세금 핵폭탄이라며 반대할라나??
[결론] 21세기 대한민국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맞다. 근데 그게 부자와 집권보수세력이 때려서 아픈거다ㅇㅇ 투표로 저 때리는 손을 잡아 묶어 못때리고 하고, 강력한 부유세를 매겨 나 스스로도 커져서 저들이 때릴 생각도 못하게 해야되는데 아무도 신경 안쓴다.. 그저 자기도 때리는 위치에 서거나, 좀 덜 맞는 자리에 올라서기만 바랄 뿐.. 끝.
산업혁명이 시작했던 18세기를 대략 자본주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 이래로 지난 300년 동안 세상은 자본가 대 일반 민중이라는 불평등의 역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 불평등이 잠시 축소되었을 때가 바로 1914~1945년이라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였는데, 전쟁으로 인한 자본의 파괴와 급격한 기술의 성장, 누진적 소득세의 도입, 그리고 인플레이션 등 우발적인 상황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주의로 인한 시장만능주의의 등장으로 소득세율은 다시금 인하되었고, 그러한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등에 의해서 최근 30~40년간의 불평등비율은 과거의 수준을 회복했고, 더욱이 앞으로의 근미래에는 인구성장과 기술진보의 한계로 인해 그러한 불평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점차로 더더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두면 21세기는 불평등이 강화되는 추세로 가고 세습자본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피게티의 예측이다.
이에 따른 피게티의 해법은 두 가지다. 바로 누진적 소득세율의 인상과 글로벌 자본세이다.
첫째, 누진세가 도입된 건 세계대전 당시 천문학적인 전비 조달을 위한 급작스런 제도였다. 당시의 소득세 한계세율은 왠만하면 70퍼센트 이상, 심지어 90퍼센트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만능주의 이후 기업활성화와 외국자본 도입을 위해 서로 다퉈가며 세율을 내렸고 지금은 최고 30퍼센트선에서 머물고 있다. 덕분에 빌게이츠, 워렌 버핏 등과 같이 일반 봉급자에 비해 몇십배나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소위 슈퍼경영자가 등장했다(심지어 버핏은 자기 비서보다 자신의 세율이 더 낮다고 실소했음). 왜냐면 이젠 아무리 자기 연봉을 올려도 떼가는 세금이 적으니까 능력주의를 부르짓으며 욕을 좀 먹어도 올릴 가치가 있으니까. 즉 과거와 같이 다시금 약 80퍼센트 가량의 누진적 소득세율을 매긴다면 이러한 소득 불평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거다. 이는 우리가 경험했던 역사다.
둘째, 글로벌 자본세에서 과세의 대상이 되는 자본의 종류는 주택, 부동산, 실물자본, 특허권, 금융자산 등을 망라하며(노무현은 고작 6억 이상 부동산에만 종부세를 물리려고 했는데,, 새누리당은 왜 이 빨갱이 피케티가 방한하게 놔두냐??), 그 의미는 개인이 소유하는 모든 자산에서 부채를 뺴고 난 후 10억 이상 순자산이다. 문제는 이러한 세금을 매기게 되면 분명 더 많은 조세도피처가 생기거나 국적 이동이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고 온건히 글로벌 자본세를 매기기 위해선 만국 공통적인 세계적 협의와 동행이 필요하다.
----------------------------------------------------------------------------
국가부채 상승
국가채무 금융성 채무, 적자성 채무
정부가 무엇을 하려고 돈을 빌리는 것 무언가를 취득 부채도 기록되고 자산도 기록되는 것 자산회수를 해서 부채를 갚을 수 있음
적자성 채무는 세입보다 세출이 많아서 돈이 부족한 것이므로 갚아야 할 돈
노무현 적자성 채무 18조 5천억
이명박 적자성 채무 89조원 4대강 수자원공사 8조원
마르크스 이론 벨 에포크
쿠즈네츠 이론 벨 커브
어떤 요소가 20세기를 이렇게 특별한 역사로 만들었는가?
부의 분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
상충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집단 사이의 힘의 관계
제도의 역할
노무현 종부세 1%
개인의 총 자본-부채의 1%
2~3배 (제일 낮았을 때)
5~6배 (지금)
7.5배 (한국)
소득세 관련해서 생산성만큼 가져간다 한계생산성 분배이론 파산한 이론 이데올로기로만
100억 슈퍼경영자 연봉의 이유는 그 스스로의 권력 때문에
근데 이 권력을 왜 쓸까
한계세율이 80%다 그럼 욕먹어가며 50억에서 100억 연봉 만들어봤자 자기한테 10억밖에 안떨어진다.
지금은 30%이내로 한계세율이 완화되면서 최선을 다해 연봉 올림
토빈세 환전할 때마다 세금 부과 수익율이 올라갈 때마다 자본이 이동하니까 자본 불안정성
아주 작은 자본이득때문에 자본이 지구 반대편으로 날라가버리니까 경제 혼란이 온다.
----------------------------------------------------------------------------
왜 혁명은 일어나지 않을까?
-----------------------------------------------------------------------------
* 잠시 마르크스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서로 다르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다음의 다섯단계로 발전해나간다. 원시공동사회에서 노예제로, 그리고 중세사회, 근대 자본주의 그리고 종국에는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사회가 그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이러한 인류 역사의 변화는 어떠한 이성적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하부구조인 물질적 질서의 내적 논리로서 필연적인 과정이다. 원시시대에 생존을 위해 도구를 만들었더니, 노동의 분화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고, 인구의 증가로 중세시대에 물레바퀴보다 더 많은 생산이 필요하면서 만든 밀곡기계가 대규모 공장을 만들며 대도시 중심의 자본주의가 나오고.. 뭐 그런 식이다. 이들 각각의 역사시대는 저마다의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었고, 인류는 그때마다 투쟁 혹은 반목적인 행위를 통해 더 나은 시대를 필연적으로 열어나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우 그것의 내적 모순은 자본가들이 상품을 만든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더 비싸게 책정하여 그 잉여 가치를 착취하는 제도라는데서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또다른 특징은 과거에 비해 대량생산기기를 통한 자동화인데, 이 변화로 인해 실업자가 생겨나고, 실업자는 취업을 위해 생존을 위해, 더 열심히 자본가에게 충성하게 된다. 이를 이용해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착취를 하게 되며,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은 점점더 피폐해진다. 종국에는 자본의 불평등이 최대화되어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그 수가 늘어나게 되고, 부자는 더 부유하게 그 수가 적어지게 된다.
이러한 불평등의 극단에 민중들에게 방아쇠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소외'다. 소외란 나에게 있던 어떠한 것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 멀어져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들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상품을 만들지만 그것은 곧 나에게서 떨어져 다른 구매자의 것이 되고 그 댓가 또한 나의 고용주인 자본가의 손에 들어가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모든 것이 화폐화되면서 인간은 생산과정에 있어서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타인을 위한 노동이 되고 자신의 여가시간까지 버려가며 열심히 하느라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 더욱이 인간이란 존재는 동물과는 달리 자유로운 의식활동이 필요한 존재인데, 노동으로 인해 예술, 과학, 문학 등의 지적 창조성을 잃어가면서 인류적 차원에서 소외된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노동대상이자 자본주의적 관점으로만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며 최종적으로는 타인으로부터도 소외되게 이른다.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관계자는 자본가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극소수인 자본가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절대다수인 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 계층은 자신의 시대 속에서 거대한 내적 모순을 발견하고, 과거의 전쟁이나 정벌행위와 같은 혁명을 통해 자본으로 해방되기 위한 투쟁을 벌이게 되며, 인류는 종국적으로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시대로 접어들것이다.
맑스의 이론은 현대에 와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자본주의가 그의 예견처럼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았으며, 자본가와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환경을 극단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지 않음으로써 혁명에의 예봉을 꺾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며 일어난 소비에트 연방이나 쿠바, 북한 등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종국엔 전체주의로 변모하여 그 본질이 흐려져 사실상 실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맑스에 대해 딱히 이런저런 구체적인 평가를 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 따르면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부는 불평등하게 분산되어 왔으며, 현대의 두 차례 세계대전과 세금제도가 그 속도를 잠시 늦추긴 했지만 불평등의 시대는 갈수록 더 커져만 갈 것이라 분석한다. 이에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글로벌 누진세를 비롯한 정치적, 도적적 차원의 발전된 세금제도로 파국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피케티 본인도 인정했듯이 이러한 유토피아적 결말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이미 힘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심지어 주류 경제학자들까지. 그들이 자신을 위협하는 자본의 투명성과 자본 그 자체에 대한 누진세를 허용할리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의 전적인 투명성을 위해서는 조세피난처 등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국가적인 협력이 필요한데,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같을 수 없는 현상황에서 또한 소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베를린 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는 자신의 저서 피로사회를 통해 현대의 극도로 성과주의적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피로와 우울증 등의 병폐를 진단했다. 이는 어쩌면 맑스가 말한 소외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이론의 효시로 불리지만 정작 그 자신은 어떠한 정치적 활동이나 연설행위를 활발하게 펼치지 않았다. 그의 저서 또한 살아 생전엔 빛을 보지 못했다. 도리어 마르크스주의자를 표방하는 집단의 출현소식에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란 말로 대답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이론을 첨예화하는데에만 주력했던 것이다.
어쩌면 맑스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위적인 공산주의적 기치가 만들 병폐와 자본주의의 최소한의 자정노력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가 필연적이라 했던 자본주의적 모순의 극단점에 아직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공산주의시대로의 전환이 이뤄지지 못했을수도 있다. 사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것이다. 누구나 사유재산 없이 평등하게 주어진 공정한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창조적인 정신활동에 주력하는 이상적인 정치경제체제다. 마치 플라톤의 철인정치처럼 말이다. 이것이 북한, 중국, 소련, 쿠바 등에 의해 부당하게 전체주의적으로 변질된 것이 문제일 뿐이다.
종국에는 맑스의 주장대로 혁명적인 전환의 시대가 올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피케티의 희망대로 자본주의가 그 스스로 또 한 번 각성의 노력으로 해소해낼 수 있을지. 그것은 아마 이 땅의 마지막 인류만이 알게 되리라.
-----------------------------------------------------------------------------
[서장]
여기에서 제시할 해답들은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p.7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
p.8
일단 인구와 생산이 모두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하면 토지는 다른 상품들에 비해 점점 더 희소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토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지주에게 내는 지대도 상승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지주들이 국민소득 가운데 갈수록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면서 나머지 인구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사회적 균형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리카도가 볼 때 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토지 임대소득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이 암울한 예언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대는 장기간에 걸쳐 분명 높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국민소득 중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농경지의 가치는 결국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재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p.13
최초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들의 핵심적인 질문은 단순한 것이었다.
반세기 동안의 산업적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대중의 상황이 여전히 그전처럼 비참하다면, 그리고 8세 미만 어린이들의
공장노동을 금지하는 것이 입법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면, 산업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 모든 기술 혁신과
이 모든 노역과 인구 이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기존 경제와 정치체제의 파산은 명백해 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장기적인 체제 변화에 관해 알고 싶어했다. 그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스스로 설정한 과제였다.
p.17
마르크스의 암울한 예언은 리카도의 예언보다 현실로 나타날 가능서이 결코 더 높지 않았다. 19세기의 마지막 3분의 1에
해당되는 기간에 임금은 마침내 올라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구매력 향상은 모든 곳으로 확산되었다.
(...) 그보다 앞선 연구자들처럼 마르크스도 지속적인 기술 진보와 꾸준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했다.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은 민간자본의 축적과 집중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다. 마르크스에게는
그의 예언들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통계자료가 부족했던 것이 틀림없다.
(...) 경제 이론이 가능한 한 충실한 역사적 자료에 뿌리를 둘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이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그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이용했다고 말할 수 없다.
p.18
과세는 모든 시민이 공공지출과 사업의 재원 조달에 기여하게 하고 세금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배분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분류 체계를 확립하고 지식과 민주적 투명성을 촉진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p.22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불평등은 '벨 커브bell curve'를 따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초기에는 불평등이 커지다가
산업화와 경제발전이 진전되면서 줄어든다는 것이다.
(...) 성장이 자동적으로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믿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 불평등이 다시 중심적인 문제가 되면 우리는 과거의 변화와 현재의 추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자료를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p.24
이 책은 주로 두 가지 유형의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는 소득과 그 분배의 불평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부의 분배, 부와 소득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이 둘은 모두 부의 분배의 역사적 동학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아무도 쿠즈네츠의 연구를 체계적으로 추적하지 않았는데, 이는 틀림없이 부분적으로는
과세 기록들에 대한 역사적이고 통계적인 연구가 학문적으로 일종의 주인 없는 땅, 즉 경제학자들에게는 너무 역사적이고,
역사학자들에게는 너무 경제적인 분야였기 때문일 것이다.
p.27
실제로 소득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임금, 급여, 상여금, 비임금노동에 따른 수입, 법적으로
노동과 관련된 것으로 분류되는 다른 보수)과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임대로, 배당금, 이자, 이윤, 자본소득, 로열티,
그리고 정확한 법적 분류와 상관없이 단지 토지, 부동산, 금융상품, 산업설비 형태의 자본을 소유한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다른 소득)이 그것이다.
p.29
부의 불평등이 앞선 세대들로부터의 상속재산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일생 동안의 저축에서 나온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p.30
- 연구의 주요 결과
이 새로운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내가 얻게 된 중요한 결론들은 무엇인가? 첫 번째 결론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매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 이 책의 핵심인 두 번째 결론은, 부의 분배의 동학이 수렴과 양극화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하는 강력한 매커니즘을 가동시킨다는 것, 그리고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힘이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막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과정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수렴을 향해 가도록 하는, 즉 불평등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생각해보자. 수렴을 위한 주된 동력은 지식의 확산, 기술과 훈련에 대한 투자다. (수요와 공급 법칙의 한 변형인) 자본과 노동의 이동성뿐만 아니라 수요-공급 법칙도 언제나 수렴을 향해 가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식과 기술의 확산에 비해 이 경제 법칙의 영향은 덜 강력하며 종종 모호하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지식과 기술의 확산은 국가 내, 국가 간 불평등을 줄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산성을 재고시킬 수 있는 중심적인 매커니즘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금 중국을 비롯해 예전에 가난했던 신흥국들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개발 국가들은 부유한 국가들의 생산 방식을 채택하고 다른 국가들과 견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생산성 면에서 약진하고 국민소득을 늘려왔다. 기술적인 수렴과정은 무역을 위해 국경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촉진할 수도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이 아니라-탁월한 공공재인-지식의 확산과 공유의 과정이다.
(...) 상속재산으 21세기 초에도 발자크 소설의 고리오 영가이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식과 기술의 확산은 오랫동안 평등을 향한 실제적이고도 중요한 추동력이 되어왔다.
p.32
- 수렴의 힘, 양극화의 힘
지식과 기술 확산의 힘이, 특히 국가 사이의 수렴을 촉진하는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손 치더라도, 어쨌거나 그 힘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즉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하는 엄청난 힘에 의해 압도당하고 좌절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결정적인 사실이다. 훈련에 대한 적절한 투자가 없으면 일부 사회집단은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완전히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성장은 어떤 집단에는 득이 되지만 어떤 집단에는 해가 될 수 있다. (최근 중국 노동자들 때문에 선진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보라.) 요컨대 수렴으로 가는 주된 힘, 즉 지식의 확산은 언제나 당연하고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또한 교육 정책, 적합한 기술 습득과 교육 기회에 대한 접근성, 관련 제도에 크게 좌우된다.
(...) 이 양극화의 요인들은 무엇인가? 첫째, (지금까지는 비교적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이지만)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이들은 나머지 사람들과 격차를 빠르게 벌려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이 미약하고 자본수익률이 높을 때 부의 축적 및 집중화 과정과 관련된 일련의 양극화 요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번째 과정은 첫 번째 것보다 잠재적으로 더 큰 불안정을 초래하는 것이며, 이는 틀림없이 장기적으로 부의 평등한 분배에 대해 주된 위협이 되는 것이다.
(...) 나는 이처럼 극적인 불평등의 증가가 고액 연봉자들의 노동소득이 전례없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대기업 최고위 경영자들과 나머지 인구의 격차가 참으로 크게 벌어진 사실을 반영한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이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설명은 이들 최고위 경영자들의 능력과 생산성이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갑자기 높아졌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더 그럴듯하고 결국 여러 증거와 훨씬 더 잘 맞는 것으로 밝혀진 또 하나의 설명은 이들 경영자가 대개 그들 자신의 보수를 결정할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보수에 아예 제한이 없으며, 많은 경우 보수가 개인적인 생산성과 뚜렷한 관련이 없다. 어쨌든 큰 조직에서는 생산성을 산정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미국에서 볼 수 있고 그 정도는 덜하지만 영국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 현상은 지난 세기에 두 나라에서 형성된 사회적, 조세적 규범의 역사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 독일, 프랑스와 유럽 대륙의 여러 국가를 비롯해)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훨씬 더 제한적이지만 그 추세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p.34
내가 r>g라는 부등식으로 표현할 이 근본적인 불평등은 이 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서 r은 연평균 자동수익률을 뜻하며,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 소득을 자본총액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g는 경제성장률, 즉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이 책의 논리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대부분 그랬고 21세기에 다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때는, 논리적으로 상속재산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의 일부만 저축해도 전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상속재산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것이고 자본의 집중도는 극히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집중도는 능력주의의 가치, 그리고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양극화의 근본적인 요인은 다른 메커니즘에 따라 강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축률은 부와 함께 극속히 증가할 수 있다. 혹은 (갈수록 일반적으로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이 애초에 물려받은 재신이 많으면 자본의 평균 실효수익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이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자본수익률은 예측할 수도 없고 자의적이며, 그에 따른 여러 방식의 치부는 또한 능력주의 모델을 위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는 리카도의 희소성 원리에 따라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부동산이나 석유 가격 상승은 구조적인 양극화를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p.39
이미 지적했고 앞으로도 여러 차례 보여주겠지만 소득과 부의 역사는 언제나 대단히 정치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사회가 불평등을 어떻게 보느냐에, 그리고 그것들을 측정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p.50
[제 1부 소득과 자본]
<제1장 소득과 생산>
그렇지만 오해는 말자. 세계 경제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자급자족 경제'가 변영을 촉진한 적은 결코 없었다. 최근 들어 세계 다른 나라들을 따라잡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 역시 분명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임으로써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 인한 자유로운 해외자본의 흐름보다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 및 유리한 교역 조건으로 인해 훨씬 더 큰 혜택을 입었다. 예를 들어 중국은 아직도 자본통제를 가하고 있다. 외국인이 중국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는 없으나 중국은 국내 저축이 대체로 충분했기 때문에 자본통제가 자본축적을 가로막지 않았다. 한국, 일본, 타이완 모두 저축을 통해 투자 재원을 마련했다. 많은 연구 결과는 또한 자유무역을 통해 얻는 이득은, 분업화와 관련된 매우 미약해 보이는 정태적인 이득으로부터가 아니라, 주로 지식의 확산 및 국경 개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형성된 생산성의 향상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컨대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수렴의 주요한 메커니즘은 지식의 확산이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국가들은 부유한 국가들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국가들과 똑같은 수준의 전문적인 노하우, 기술, 교육 수준을 확보하는 만큼 부유한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 지식의 확산은 하늘에서 내려준 만나manna가 아니다. 그것은 종종 국제적 개방과 무역에 의해 가속화된다.(자급 경제는 기술 이전을 장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식의 확산은 다양한 경제 주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정된 법적 '틀'을 보장하면서 자국민의 교육과 훈련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촉진하는 국가의 자금 조달 능력과 제도에 달려 있다. 따라서 지식의 확산은 적합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내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약하자면 이것들이 글로벌 성장과 국제적 불평등에 대해 역사가 가르쳐주는 주요 교훈이다.
p.91
<제2장 성장:환상과 현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21세기 세계가 저성장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알게 될 사실은 예외적인 시기나 따라잡기가 이뤄지는 시기를 제외하면 성장은 늘 비교적 느리게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p.93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은 영미권 특유의 왕성한 기업가 정신을 약화시켰다고 하는 '복지국가 체제'를 접고, 미국과 영국이 다시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해줄 19세기의 순수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갈 것을 천명했다. 이후 성장률이 다시 한번 유럽 대륙과 일본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이 두 나라에서는 이 보수혁명이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사실 1980년경에 시작된 경제자유화나 1945년에 시작된 정부개입주의는 모두 그런 칭찬이나 비난을 받을 만하지 않다. 프랑스, 독일, 일본은 1914~1945년의 전쟁으로 몰락한 이후 각각 어떤 정책을 택했건 이와는 상관없이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 미국과 영국의 경제자유화 정책은 대체로 성장을 높이지도 떨어뜨리지도 않았기에 이 단순한 현실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p.123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제3장 자본의 변신>
19세기 고전 작품들에서 재산은 어디서나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자본의 크기나 소유주에 관계없이 주로 이 두가지, 즉 토지나 국채 형태로 존재했다.
p.139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
p.141
자본의 성격은 변했다. 과거에 주로 토지였던 자본은 이제 부동산, 산업 및 금융자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
p.146
공공부채에 관한 이 역사적인 기록은 몇 가지 이유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이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통찰력을 발휘해 공공부채를 민간자본의 도구로 보면서 왜 그토록 경계헸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시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도 공공부채 투자자들은 두둑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화ㅣ주의자들의 염려는 더욱 컸다.
(...) 마르크스는 1849~1850년 『프랑스의 계급투쟁The Class Struggle in France』이란 책에 실린 격렬한 글에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신임 재무장관으로 은행가와 자본가들을 대변한 아실 풀드가 자본소득자들을 위해 단호하게 주류세 인상을 결정한 것을 비난했다.
(...) 20세기에는 공공부채에 대한 전적으로 다른 견해가 부상했다. 이런 견해는 부채가 공공지출을 늘리고 가장 가난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득이 되도록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견해의 차이는 매우 단순하다. 즉 19세기에는 채권자가 부채에 대한 두둑한 이자를 받아 사적인 부를 늘릴 수 있었던 반면, 20세기에 들어서 부채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하락했고 가치가 줄어든 화폐로 지불되었다. 이런 상황은 실제로 그만한 세금 인상 없이 국가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재정적자를 메우도록 해주었다. 공공부채에 대한 이러한 '진보적'인 관점은, 인플레이션이 오래전부터 19세기보다 그리 높지 않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재분배 효과가 비교적 불분명한데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 둘째, 인플레이션 메커니즘은 무기한 작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단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채권자들은 좀더 높은 명목이자율을 요구하고, 따라서 물가 상승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높은 인플레이션은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고, 일단 그런 과정이 진행되면 그 결과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 공공부채 문제에 대해 대표적 경제주체 모형을 사용할 경우 정부의 빚이 국민총자본뿐만 아니라 재정적 부담의 배분에 있어서도 완전히 중립적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 이런 해석은 실제로도 전체 국민 가운데 소수가 공공부채의 대부분을 소유하며, 따라서 그 부채는 상환되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제대로 상환될 때에도 내부적으로 중요한 재분배의 수단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다. 항상 부의 분배의 특징이었던 부의 심각한 집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집단의 사이의 불평등을 살펴보지 않고 이런 문제들을 연구하는 것은 사실상 그 주제의 중요한 측면에 대해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쟁점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p.160
모든 나라가 19세기에 그리고 대체로 1930년대 초까지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주의'를 고수했는데, 이 전통적인 교리는 영구적으로 신뢰를 잃었다. 많은 나라가 더 높은 수준의 국가 개입주의를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정부와 일반 대중은 세계를 재앙으로 이끌면서도 스스로는 더 부유해진 금융 및 재계 엘리트들의 지혜에 의문을 제기했고, 다른 유형의 '혼합'경제에 관해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통적인 형태의 사유재산과 더불어 기업에 대한 다영한 수준의 공공소유를 허용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금융시스템과 더 전반적으로 민간 주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강력한 규제와 감독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 나라가 재건되고 이 나라의 역사에서 경제성장이 어느 시기보다 더 강력했던 영광의 30년 동안 프랑스는 혼합경제 체제를, 어떤 면에서는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 혹은 적어도 개인 소유주가 더 이상 대기업을 통제할 수 없는 국가자본주의를 갖고 있었다.
(...) 1950년 이후 국가자본주의의 시기가 끝나고, 프랑스는 21세기의 새로운 사적 소유 자본주의를 약속하는 땅이 되었다.
(...) 한편 1970년대 소련과 중국의 국가주의 모델의 실패가 점점 더 분명해지자, 공산권의 두 거인은 1980년대에 기업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사유재산을 도입해 경제 시스템의 점진적인 자유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제5장 자본/소득 비율의 장기적 추이>
장기적으로 살펴봤을 때, 부의 성격은 완전히 변했다. 농경지 형태의 자본이 점진적으로 산업 및 금융자본, 도시의 부동산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사실은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의 배수로 측정되는 자본총량-경제와 사회에서 자본의 전반적인 중요성을 측정하는 비율-에는 아주 오랜 기간 그리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p.199
자본주의의 제2기본법칙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이 공식은 분명하면서도 중요한 점을 반영하고 있다. 즉 저축을 많이 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소득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대한 자본총량을 축적할 것이고, 이는 사회 구조와 부의 분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해 거의 정체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필연적으로 엄청난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다.
따라서 18세기와 19세기에 관찰된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21세기에 자본/소득 비율이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회귀한 것은 저성장 체제로의 회귀로 설명될 수 있다. 이처럼 성장 둔화, 특히 인구 성장의 둔화는 자본이 귀환하는 원인이다.
p.202
전반적인 변화 양상은 분명하다. 거품은 차치하고, 1970년 이후 부유한 국가들에서 민간자본이 강력하게 회복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새로운 세습자본주의가 출현한 것이다. (...) 성장률 둔화, 특히 인구증가율의 둔화다. (...) 두 번째는 부동산과 주식 시세의 장기적인 반등 현상이다.
p.210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노득분배>
자본총량이 국민소득의 6배에 해당되고, 평균 자본수익률이 연5퍼센트라면,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α는 30퍼센트다. (그러므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몫은 70퍼센트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도출되는데, 그렇다면 자본수익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p.241
모든 문명사회에서 자본은 두 가지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자본은 주택을 제공한다. 좀더 엄밀히 말해서 자본은 '주거 서비스'를 창출한다. 이것의 가치는 동등한 주택의 임대가치에 의해 측정되며, 밖에서 자는 것에 비해 집안에서 잠자고 생활함으로써 발생하는 안락함의 증가분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둘째, 자본은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산요소(생산과정에 필요한 토지, 건물, 사무실, 기계, 사회기반시설, 특허 등)의 역할을 한다.
p.257
확실히 제2부의 주된 교훈은 역사적 과정에서 자본과 자본 소유로부터 나오는 소득의 중요성을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자연발생적인 힘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을 향한 진보가 반드시 민주적이고 능력주의적인 합리성을 향한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주된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술에는 제한이 없고 도덕성도 없다.
(...) 요약하자면,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을 피해 자본축적 과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자본의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혹은 적어도 노동에 비해 자본의 거시경제적 중요성을 진정으로 축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도 이와 마찬가지인지를 고찰해야만 할 때다.
p.282
[제3부 불평등의 구조]
<제7장 불평등과 집중: 기본적 지표>
선량한 두 사람과 달리 보트랭은 몹시 사악하고 냉소적이다. 그는 막대한 유산을 손에 넣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라고 라스티냐크를 꾀는데,
(...)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공부, 재능,노력을 통해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본질적으로 환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는 라스티냐크가 유산보다 직업적 전문성이 더 중요한 법률이나 의학 분야의 공부를 계속할 경우 어떤 직업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상세히 일러주고, 특히 그 각각의 직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연봉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준다. 결론은 분명했다.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해가며 학과 수석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한 끝에 성공한 법률가가 된다 하더라도, 그는 보통 수준밖에 안 되는 소득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먄서 진짜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은 아예 포기해야 할 것이다.
p.288
<제8장 두개의 세계>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부의 계층 구조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부동산의 중요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 반면 상위 1퍼센트 집단에서는 금융자산 및 사업자산이 부동산보다 분명하게 두드러진다.
(...) 주택은 중산층과 적당히 잘 사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 대상이지만, 진정한 부를 주로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금융자산 및 사업자산이다.
p.312
20세기에 불평등을 감소시킨 요인은 상당 부분 전쟁의 혼란과 그에 뒤따른 경제적, 정치적 충격이었다.
(...) 20세기에 과거를 지우고 사회가 새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조화로운 민주적 혹은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바로 전쟁이었다.
이 충격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제2부에서 그것을 다루었는데, 바로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한 파괴, 대공황이 불러온 파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시행된 모든 새로운 공공정책(임대료 규제정책부터 국유화, 국채에 기초하여 생활하던 자본소득자 계층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안락사에 이르기까지)이다.
(...)자본소득은 상위 0.1퍼센트 혹은 0.01퍼센트에서만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닐 뿐, 상위 1퍼센트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비교적 미미하다.
(...) 요약하자면 프랑스에서 일어난 현상은 다음과 같다. 자본소득자들(혹은 적어도 그중 10분의 9는)이 경영자들에게 뒤처졌다. 그런데 경영자들이 자본소득자들을 앞지른 것은 아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의 집중을 제한하고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존재했던 초자본소득자 사회의 부활을 지금까지 막아온 구조적 요인의 하나로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누진적인 소득세와 상속세의 도입이다.
p.331
(...) 반대로 '1퍼센트'에서는 노동소득이 조금씩 부수적이 되는 한편 자본소득이 점점 더 주요한 소득의 원천이 된다. 또 다른 흥미로운 패턴은 다음과 같다. 자본소득을 토지 및 건물의 임대료와 유동자본에서 나오는 배당금 및 이자로 나누어 살펴보면 상위 10퍼센트의 자본소득의 매우 큰 부분은 주로 후자(특히 배당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임대료의 비율은 총소득의 10퍼센트 정도에 머물러 있고 상위 1퍼센트에서는 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패턴은 대규모의 재산이 주로 금융자산(대부분 주식과 동업 지분)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p.335
이 장에서 사용된 세금 자료의 한계가 강조되어야 한다. 도표8.3과 8.4는 오로지 소득세 신고에 보고된 자본소득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탈세(투자소득은 임금보다 숨기기 쉽다. 예를 들어 납세자가 거주하는 국가와 협력하지 않는 국강에 해외 은행계좌를 만들어 이용할 수 있다)와 모든 종류의 자본소득에 대해 소득세를 합법적으로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세금감면제도(프랑스와 다른 국가들은 원래 소득세에 모든 유형의 소득을 포함시키려 했다)로 인해 실제 자본소득은 과소평가된다.
(...) 소득세 신고의 또 다른 중요한 한계가 있다. 그것을 통해서는 보고된 자본이 원래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특정 시기에 납세자가 소유한 자본으로 얻은 소득은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자본이 납세자가 상속받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일생 동안 노동으로부터(혹은 자본으로부터) 나온 소득으로 축적된 것인지를 알 수 없다.
p338
1990년대에 프랑스에서는 놀랍고도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특히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최고위 경영자들의 보수가 믿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p.349
미국이 눈에 띄는 이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슈퍼경영자'라는 계급이 처음 등장한 곳이기 때문이다.
p.350
이 상위 소득집단들에는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포함되어 있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미국 경제가 꽤 잘 돌아가고 있으며 특히 능력과 공로에 대해 정확하게 보상한다고 믿는다. 충분이 이해가 되는 인간적인 반응이다.
p.356
지금까지 설명한 바대로 금융위기 자체는 불평등의 구조적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역은 성립할까? 미국에서의 불평등 증가가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데 기여했을까? 미국 국민소득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하는 몫이 지난 세기에 두 번, 즉 1928년(1929년의 증시 대폭락 직전)에 한 번, 2007년(2008년의 증시 대폭락 직전)에 다시 한번 정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불평등의 증가가 미국의 금융 불안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평등 증가의 한 결과로 미국의 하류층과 중간층의 구매력이 거의 정체되었고 그리하여 평범한 가구가 빚을 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특히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그리고 부유층이 금융시스템에 투입한 거대한 저축으로부터 높은 수익률을 얻고자 갈망했던 비양심적인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점점 더 관대한 조건으로 신용을 제공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불평등의 증가가 미국 경제의 예외적으로 강한 성장과 동반되었더라면 상황은 꽤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이전의 10년보다 더 느리게 성장했고 그리하여 불평등의 증가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득이 거의 정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p.357
미국의 불평등 증가는 주로 전례 없는 임금불평등의 증가와 특히 임금계층의 꼭대기층, 그중에서도 대기업 최고위 경영진의 보수가 극도로 높아진 결과다.
p.359
미국에서 오늘날 볼 수 있는 차이점은 소득계층의 훨씬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분명히 밝혀야 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점은 매우 높은 소득의 증가와 매우 높은 급여의 증가는 주로 '슈퍼경영자', 즉 노동의 대가로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의 극히 높은 보수를 받는 최고위 경영자들의 등장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p.362
<제9장 노동소득의 불평등>
이렇듯 프랑스와 미국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궁극적으로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을 줄일 뿐 아니라 노동력의 평균 생산성과 전체적인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교육과 기술은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프랑스가 질적으로 높은 전문교육과 고등교육 기회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더 많은 인구가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급여 체계의 최저에서부터 중간 단계의 끝에까지 위치한 임금을 상승시키고 임금과 총소득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차지하는 몫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p.368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지금 모든 임금불평등이 공정한 보수와 관련된 사회 규범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계생산성 이론 기술과 교육 간의 경주 이론은 임금 분포의 장기적인 변화양상에 대해 적어도 어떤 수준의 급여까지는, 그리고 오느 정도의 정확성 내에서는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한다. 기술과 기능은 대부분의 임금 결정에 한계를 설정해준다. 그러나 특정 직무, 특히 대기업 고위경영진의 직무는 대체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주어진 직무의 생산성 측정에 오차가 더 커진다. 그러면 기능-기술 논리의 설득력이 약해지고 사회 규범 논리의 설득력이 커진다. 이러한 영향을 받는 사람은 직원들 중 소수에 불과하며 국가와 시기에 따라 기껏해야 몇 퍼센트, 아마도 1퍼센트 미만일 것이다.
(...) 어쨌든 최고위 경영자들에게 주어진 극도로 후한 보수는 부의 분배를 불평등하게 만든 강력한 요인이다.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개인들이 자신의 급여를 스스로 정한다면 불평등은 (적어도 어느 한도까지는) 계속 커져만 갈 것이다.
(...) '행운의 보수'를 지급하는 경향은 국가와 시기별로 크게 차이를 보이며 세법의 변화, 특히 소득세 최고한계세율과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명백하게 함수관계에 있다.
(...)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의 인하는 최상위 소득의 폭발적인 소득 증가로 이어졌고, 그 결과 세제의 변화로부터 혜택을 받는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였다. 이들은 최고세율을 낮게 유지하고 심지어 더 내리는 데 관심이 있으며, 그렇게 얻은 횡재로 정당, 압력단체, 싱크탱크에 자금을 댈 수 있었다.
p.400
<10장 자본 소유의 불평등>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과거에 축적된 부가 경제성장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다시 자본으로 축적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노동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 이제 논리적으로 주장을 전개해보자.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체계적으로 더 높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까? 명확히 하자면, 나는 이 문제를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이해한다.
(...) 일반적으로 4~5퍼센트인 순수한 자본수익률은 역사를 통틀어 항상 글로벌 성장률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하지만 20세기, 특히 세계 경제가 연간 3.5~4펀센트의 성장률을 보인 20세기 후반에 이 둘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었다. 21세기에는 성장(특히 인구성장)이 둔화되면서 십중팔구 차이가 다시 벌어질 것이다. 제1부에서 논의한 중심 시나리오에 따르면, 세계의 성장률은 2050년에서 2100년 사이에 매년 약 1.5퍼센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9세기와 거의 같은 성장률이다. 그렇다면 r과 g 사이의 격차는 산업혁명 당시와 맞먹는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자본에 대한 과세와 다양한 종류의 충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와 국가들 간의 자본 유치 경쟁 격화에 따라 이념적 분위기가 극적으로 변해 이러한 세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
(...) 결과적으로 우리는 20세기에 조세적, 비조세적 충격들로 인해 역사상 최초로 자본의 순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낮은 상황이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러 사건(전쟁으로 인한 파괴, 1914~1945년의 충격으로 가능해진 누진세 정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의 이례적인 성장)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상황이 나타났고, 이는 거의 한 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모든 징후는 이런 상황이 끝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요약하자면 부등식 r>g는 특정한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만, 다른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불확정적인 역사적 명제다.
p.421
'완전'자본시장(각 자본소유자가 경제 내에서 실현 가능한 최고의 한계생산성과 동일한 수익률을 얻고,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이자율로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릴 수 있는 시장)의 존재에 기초한 표준 경제모형에서 자본수익률 r이 g보다 낮으면 경제 주체들은 자신(그리고 후손들)의 미래 소득이 이자율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임을 알아차려서 자신이 무한히 부유한 것처럼 느낄 것이고, 따라서 (r이 g보다 높아질 때까지) 즉각적인 소비를 위해 무한정 돈을 빌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형태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타당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표준 경제모형에서 r>g가 성립되고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r>g의 성립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 내가 생각하기에 r>g부등식은 절대적인 논리적 필연성으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역사적 사실로서 분석되어야 한다. r>g는 각각 상당히 독립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우선 성장률 g는 구조적으로 낮은 경향이 있다. 인구 변천이 완료되고 국가 기술력이 세계적인 첨단기술 수준에 이르러 혁신의 속도가 상당히 둔화되면, 일반적으로 1퍼센트를 크게 웃돌지 않는다. 다음으로 자본수익률 r은 무수한 기술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에 의존하며, 이 요인들이 함께 작용해 4~5퍼센트의 수익률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1퍼센트보다는 분명히 높다.)
p.431
* 균형분배는 존재할까?
[예시]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나온 상속법과 이후의 민법은 두 가지 특징을 근간으로 했다. 바로 대리 상속인 지정 제도의 폐지와 형제자매 사이에 재산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원칙(균등 분배)의 도입이었다. 1804년 이후부터 이 원칙이 엄격하고 지속적으로 적용되었다.
p.433
분명한 것은, 권리와 기회의 평등이 부의 평등한 분배를 보장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단 자보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훨씬 더 높으며 부의 축적과 상속의 동학이 자동적으로 매우 심각한 부의 집중을 낳고, 이때 형제자매 간의 평등한 분배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조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개별 가족이 소유한 재산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인구적 충격들이 항상 존재한다.
(...) 형제자매 간의 균등한 재산 분배에는 약간의 영향을 미쳤지만 r>g 차이만큼은 아니었다.
(...)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불평등의 악순환이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 마침내 저축을 투자할 곳이 없어질 것이고, 글로벌 자본수익률은 균형 분배가 나타날 때까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1913년 파리의 전체 부에서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몫이 이미 70퍼센트를 넘어 섰다는 점에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충격이 없었더라면 균형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만하다.
p.435
<제10장 자본 수유의 불평등>
자본축적이 몇 세대에 걸친 장기적인 과정임을 인식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벨 에포크 시대 유럽에서 진행된 부의 집중은 수십 년 혹은 심지어 수백 년에 걸쳐 누적된 과정의 결과였다.
(...) 달리 말하면, 오늘날 부가 과거만큼 불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1945년 이후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본소득에 부과된 세금의 효과는 부의 전체적인 측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부의 분배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20세기에 최대 규모의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와 함께 누진세, 즉 최상위 소득과 특히 최상위 자본소득에 더 높은 세율을 저굥하는 세금이 가오하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세금의 결과로 인해, 만약 가족의 재신이 평균소득만큼 빠르게 증가하기를 원한다면 이후 세대가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많이 하야만 했다.(그렇지 않으면 특히 수익이 높은 투자를 해야 했다.) 그리하여 부자들은 부의 계층 구조에서 원래의 지위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거꾸로, 바닥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위쪽으로 올라가기가 더 쉬워졌다.
p.445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유럽에서 부의 집중이 벨 에포크 시대보다 두드러지게 낮은 현실은 주로 우연적인 사건들(1914~1945년에 일어난 충격들)과 자본 및 자본소득에 부과된 세금 같은 특정한 제도의 결과다. 그러한 제도들이 결국 무너진다면 부의 불평등이 과거 수준과 비슷해지고, 어떤 상황에서는 더 높아질 위험이 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평등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다.
(...) 그러나 이미 한 가지 결론은 꽤 ㅂㄴ명하다. 현대적 성장의 특징이나 시장경제 법칙과 같은 어떤 것이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안정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p.450
<제11장 장기적으로 본 능력과 상속>
더 정확히 말해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제시할 것이다. 자본수익률이 현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과거에 축적된 자신의) 상속이 (현재 축적되는 자산인) 저축을 압도한다.
어떤 의미에서 부등식 r>g는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도 과거에 만들어진 자산이 노동을 통한 저축으로 만들어진 자산에 비해 자동적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거의 필연적으로 이는 과거에 만들어진 불평등, 즉 상속을 더 지속적이고 과도하게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p.452
이 첫 번째 힘과 관련된 낙관적인 믿음은 매우 분명하고 언뜻 보기에 충분히 그럴듯하다. 단순히 부의 중요성이 약화되었기 때문에(더 정확히 말하면 소유가 가능하고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으며 일반적인 재산권 법률 아래 상속인에게 완전히 이전될 수 있는 비인적자본 형태의 부의 중요성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상속자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중요성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상황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혹은 적어도 사람들이 이따금 상상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토지자본이 금융자본, 산업자본, 부동산이 되었지만 그 전반적인 중요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는 자본/소득 비율이 벨 에포크 시대와 그 이전 시기에 달성했던 수준을 머지않아 회복할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낸다.
부분적으로는 기술적인 이유로 인해 자본은 오늘날의 생산과 사회적 삶에서 여전히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생산을 하려면 물론 설비와 사무 공간, 주택 등을 구매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의 기술과 능력의 수준은 분명 높아졌다. 그러나 비인적자본의 중요성도 그에 비례하여 높아졌다. 따라서 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상솓자산이 점진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 뚜렷한 선험적인 이유는 없다.
p.460
상속의 자연적인 종말을 설명할 수 있는 두 번째 힘은 기대수명의 상승인데, 이는 사망률 m을 하락시키고 상속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길게 만든다.(이는 유산의 크기를 축소시킨다.) 사실 장기적으로 사망률이 하락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그러나 사망률의 변화로 인해 경제의 중요한 요소인 상속자산이 필연적으로 사라지리라는 생각은 심각한 잘못일 것이다.
(...)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로 인해 2000~2010년과 2040~2050년 사이에 사망률이 상승하리라는 예상은 명백히 순수한 수학적 효과로 인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20세기 후반의 적은 상속액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향후 수십 년 동안 상속액이 가파르게 증가하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 사람들은 아마도 더 오래 살겠지만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다. 인구 집단 규모의 상당하고 꾸준한 증가만이 사망률과 상속액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고령화가 프랑스에서처럼 인구 집단 규모의 안정화와 함께 나타나거나 심지어 많은 부유한 국가에서처럼 인구 집단의 규모 감소와 함께 나타난다면 상속액이 매우 커질 수 있다.
p.461
그러면 기대수명의 상승은 상속자산의 중요성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분명히 기대수명의 증가는 사망률의 구조적인 감소를 가져온다.
(...) 그러나 사람들이 더 늦게 사망하고 더 늦게 상속받는다는 사실이 상속자산의 중요성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부분적으로는 살아 있는 개인들 사이의 증여가 더 중요해져서 이 고령화 효과를 상쇄하기 때문이고, 또 부분적으로는 고령화 사회에서 부도 나이가 들어서 나중에 상속받는 이들이 더 많은 액수를 상속받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고령화 사회에서는 상속이 더 나중에 이루어지지만, 부도 함께 늙어가기 때문에 이 효과가 고령화 효과를 상쇄한다.
p.464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 이론에 따르면,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부를 집적하는 주된 이유는 퇴직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개인들이 고령의 시기에 그들의 저축을 대부분 소비할 것이고, 따라서 아주 적은 부를 남기거나 아예 남기지 않고 죽을 것이다. 따라서 아주 적은 부를 남기거나 아예 남기지 않고 죽을 것이다.
(...) 분명 퇴직을 대비한 저축은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가족의 재산을 계속 남기려는 바람이 부의 축적에서 언제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증여의 대부분이 흔희 부동산 투자의 형태로 자녀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또한 증여는 평균적으로 증여자가 죽기 약 10년 전에 이뤄진다.
p.467
최근 미국에서는 슈퍼경영자들이 받는 높은 임금(평균 소득의 최대 50~100배)을 종종 이런 식으로 정당화한다. 이런 고임금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 사람들만 진정한 부를 얻을 수 있으므로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결국 슈퍼경영자들에게 지급되는 수백만 혹은 수천만 달러가 사회정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의 주장은 미래에 더 극심한 불평등을 낳는 토대를 닦을 수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과거의 가장 나쁜 두 세계가 결합된 모습일 것이다. 즉 상속자산의 불평등도 극심하고, 매우 심한 임금의 불평등은 능력과 생산성 측면에서 정당화되는(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실에 거의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세계다. 이처럼 극단적인 능력주의는 슈퍼경영자들과 자본소득자들 간의 경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p.498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표현의 이러한 커다란 변화는 어느 정도는 당연하지만 많은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분명 오늘날에는 18세기보다 교육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더욱 능력 본위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실제로 증가했다고 할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현상이 대단한 규모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분명 모든 사람에게 갖가지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진다고도 말할 수 없다. 사실 교육 불평등은 상당 부분 그저 상향 이동했을 뿐이며 교육으로 세대 간의 이동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도 없다. 그렇긴 하지만 계승자가 얼마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적자본의 이전은 항상 금융자본이나 부동산의 이전보다 더 복잡하다. 이런 점 때문에 상속자산이 사라져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왔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고 부분적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오해가 있다. 첫째, 상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속자본의 분배가 변화했을 뿐으로,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다.
(...) 다시 말해 우리는 소수로 이루어진 아주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에서 훨씬 더 많은 수의 덜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로 옮겨왔다. 말하자면 소자본소득자들pefits rentiers의 사회인 셈이다.
p.501
우리의 민주주이 사회는 능력 중심의 세계관, 혹은 적어도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고 있다.혈연이나 임대료보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불평등이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과 희망은 현대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현실의 생활 상태는 매우 불평등한데,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의적인 우연성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p.503
<제12장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새롭고 더 정교한 법적 장치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신탁기금, 재단 등은 흔히 세금을 회피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 세대가 관련 자산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 특히 순전히 사적인 가족 재단과 진정한 자선 재단을 구별하기란 어렵다. 사실 여기에 관련된 가족들은 재단을 사적인 이익과 자선적인 목적 양쪽 모두에 이용하며, 자선 재단인 경우에도 그들의 자산에 대한 통제권은 주로 유지하고자 한다.
(...) 경우에 따라서는 상속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주된 목적인 가족신탁이 좀더 자선적인 목적의 재단과 함께 존재하기도 한다.
(...) 이는 이런 유의 법인과 관련하여 공적인 사용과 사적인 사용 간의 경계에 어느 정도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인해준다. 결국 원래 진정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규정된 재단들이 그 목적을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실행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p.538
이렇게 보면 인플레이션은 실제로 게으른 부자에 대한 세금,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 투자되지 않은 재산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실질자산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인플레이션이라는 세금은 충분히, 완전하게 회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규모의 효과는 부동산 투자에서 특히 중요하다. 실제로 부동산은 대다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형태의 자신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장 단순한 투자 방법은 집을 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할 수 있으며(주택 가격은 대체로 최소한 소비자물가 상승률만큼 오르므로), 주택소유자는 사실상 연 3~4퍼센트의 실질투자수익률과 맞먹는 주택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10~50만 유로는 주택을 구입하기에 충분한 금액이 아니다. 이것으로는 주택을 구입할 가능성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심지어 100~200만 유로를 가지고 있다 해도 대도시에 위치한 직장에 근무하며 급여가 임금계층 구조상 상위 2~3퍼센트 안에 들지 못하는 경우라면, 설사 기꺼이 장기간 부채를 안고 고율의 이자를 지불할 의향이 있다 하더라도 주택이나 아파트를 구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기에 적은 재산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세입자 상태로 지내게 되며 따라서 이들은 오랜 기간-어쩌면 평생-상당한 금액의 임대료를(집주인에게 높은 자본수익을 가져다주면서) 지불해야 한다. 그동안 이들의 은행 저축은 간신히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뿐이다.
반대로, 상속이나 증여 덕분에 좀더 많은 재산을 기반으로 출발한 사람이나 상당한 연봉을 받는 직장인 혹은 이 둘 모두에 해당되는 사람의 경우 더 빨리 주택과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른다. 그러면 주택 투자에 대한 3~4퍼센트의 실질투자수익을 얻고,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저축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규모의 효과로 인해 생기는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필료로 하는 것보다 더 작은 아파트를 임대 목적으로 구입함으로써 혹은 다른 유형의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이런 장벽을 피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상황이 다소 악화되어 이런 방법도 여의치 않다. 인플레이션이 제로였던 19세기에는 소규모 저축인들이 이를테면 국채를 매수함으로써 3~4퍼센트의 실질수익률을 올리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소규모 저축인들은 그런 수익을 누릴 수 없다.
요약하자면 인플레이션의 주요한 영향은 평균 자본수익률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수익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지대를 없애지 못한다. 아마도 그와 반대로 자본 분배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민주적 투명성과 현실적인 효과 모두에서 훨씬 더 적절한 정책은 바로 누진적 자본세다.
p.540
특히 전 세계에서 중국의 소유가 확대되는 현상과 관련하여 현재 확산되고 있는 두려움은 순전히 환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유한 국가들은 그들이 때때로 생각하는 것보다 사실 훨씬 더 부유하다. 오늘날 유럽의 가계가 소유한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총가치는 부채를 빼고 대략 70조 유로에 달한다. 이에 비해 중국의 다양한 국부펀드에 중국런민은행의 외환보유액을 더한 총자산은 약 3조 유로, 또는 유럽 가계 자산의 20분의 1 미만이다. 부유한 국가들은 가난한 국가들에게 넘어갈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일이 있기 위해서는 가난한 국가들이 한참 더 부유해져야 할 텐데, 그러려면 수십 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p.553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
<제13장 21세기를 위한 사회적 국가>
평등이 정상적인 것이며 불평등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공익'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일이 남는다. 선언문의 입안자들은 주로 앙시앵레짐의 질서와 특권 폐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이라는 이 구절은 좀더 넓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한 가지 합리적인 해석은 사회적 불평등이 오직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특히 가장 불리한 입장에 처한 사회적 집단의 이익에 공헌할 때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리와 기회가 가장 적은 사람들의 이익에 공헌하는 한, 기본적인 권리와 물질적 혜택은 가급적 모두를 대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런 해석은 미국의 철학자 존 롤즈Jhon Rawls가 그의 책 『정의론Theory of Justice』에서 제시한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과 그 취지가 유사하다. 그리고 만인의 최대의 평등한 '역량capabilities'에 관한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접근법 또한 기본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p.572
제3부에서는 20세기를 거치면서 교육의 평균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의 불평등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교육 수준은 다음과 같이 높아졌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장은 과거의 초등학교 졸업장 정도의 의미이고, 학사학위는 과거의 고등학교 졸업장처럼 취급된다. 기술과 작업 환경의 수요가 변하면서 임금 수준도 모두 유사한 비율로 상승했고, 그 결과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았다. 계층 이동성은 어떠한가?
...이는 장기적으로 계층 이동이 더 많아지는 경향을 나타내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몇 년간은 계층 이동성이 줄었을 수도 있다.
p.577
이에 관한 한 가지 설명은 미국 최고 엘리트 대학들이 극히 높은 수업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1990년에서 2000년 사이 이들 대학의 수업료는 미국 상위계층 소득 증가율을 아주 근접하게 따르며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는 과거 미국에서 관찰되었던 계층 이동의 감소 현상이 미래에는 한층 더 심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고등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미국에서 점점 더 많이 논의되고 있는 주제다. 연구 결과 부모가 네 부분으로 나뉜 소득계층에서 하위 2개 분위(하위 25퍼센트와 하위 25~50퍼센트 계층)에 속한 경우 그 자녀들 중 학사학위를 받은 자녀의 비율이 1970~2010년 10~20퍼센트로 정체되었다. 반면 부모가 상위 2개 분위에 속하는 경우 그 자녀들의 학사학위 취득률은 같은 기간에 40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상승했다. 다시 말해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대학 진학에 거의 완벽한 예측 요인이 된 것이다.
이러한 교육 기회 불평등의 문제는 경제적으로 최상위에 있는 계층에도 존재하는 듯하다. 이는 일류 사립대학의 비싼 학비(중상위 계층 부모의 소득과 비교해도 비싸다) 때문만이 아니라 입학 허가가 대학에 기부할 수 있는 부모의 재정적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연구는 대학 졸업생들이 모교에 기부하는 사례가 이상하게도 그 자녀들의 대학 입학 시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료의 다양한 출처를 비교해보면 하버드대 학생 부모의 평균 소득은 현재 약 45만 달러에 이른다는 추정이 가능한데, 이는 미국 상위 2퍼센트 소득계층의 평균 소득에 해당된다. 그러한 연구 결과는 오직 실력을 근거로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관념과 전적으로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공식적인 능력주의 담론과 현실의 차이가 특히나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학생 선발과정이 전혀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p.578
<제14장 누진적 소득세를 다시 생각한다>
과세제도에 있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누진적인 소득세의 도입과 발전이다. 이 제도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비상상황에서 만들어져, 기 기초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에 이루어진 두 번째로 중요한 국가재정의 혁신인 상속에 대한 누진세도 같은 이유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최근 수십 년 동안 여러 도전에 직면해왔다.
p.589
과세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과세는 상당히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문제이고, 아마도 모든 정치적인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세금이 없다면 운명공동체를 이루지 못할 것이고 집단행동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언제나 사실이었다. 때문에 모든 주요 정치적 격변의 핵심에는 국가재정의 혁명이 자리잡고 있다.
...보통은 소득세, 자본세, 소비세로 구분된다.
...20세기에 네 번째 범주의 세금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정부가 후원하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기여금이었다.
...이런 정의에는 이견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세금 유형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더 적절한 기준은 각 유형이 어느 정도로 비례적인가, 아니면 누진적인가 하는 것이다. '비례세'는 세율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세금이다.('평률세flat tax'라고도 한다.) 누진세는 소득이나 소유한 자산 또는 소비가 더 많은 사람에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세금이다. 한편 역진세는 더 부유한 사람일수록 적용되는 세율이 낮아지는 세금인데, 이들이 (합법적으로 세금 부담을 최적화하거나 불법적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면제받았거나 법률이 역진적인 세율을 부과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1990년 마거릿 대처 총리를 실각시킨 '인두세poll tax'가 역진적인 세율을 부과한 대표적인 경우다.
p.590
첫 번째 이유는, 전반적인 과세가 대다수 인구의 소득과 상당 수준 비례한다고 해도, 가장 높은 소득과 가장 많은 재산에 훨씬 더 높은(혹은 더 낮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은 불평등의 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에서 조세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많은 정부가 자본소득에 대한 누진적 소득세를 면제해주었다. 이런 경향은 특히유럽에서 나타났는데, 유럽 내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가들은 지금까지 다른 국가들과 조세정책을 조율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노동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하지만 이자나 배당금, 다른 금융소득 등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끝없는 바닥으로의 경주가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중 하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금이 고소득 계층에서 역진적이 되었다는 것이다.(혹은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세율이 높은 것은 이들 계층에서 소비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이 두 가지가 프랑스 세수의 4분의 3을 차지한다.)
...이와 반대로 소득 상위 1퍼센트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역진성은, 이 계층에서는 누진적 과세에서 대부분 면제되는 자본소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소득에 대한 누진세 면제 효과가 자본총량에 대한 세금(이는 가장 누진적인 세금이다) 효과보다 더 커서 상류층의 세율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⑴ 재정국가 및 사회적 국가에 대한 공감대는 저성장으로 인해 이미 약화되었는데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다. 특히 상위계층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든 중산층의 지지가 감소할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할 것이다. 조세제도가 전체적으로 불공정한데, 왜 다른 사람을 위해 계속 세금을 내야 하는가? 따라서 현대적인 사회적 국가가 계속 유지되려면, 그 기초가 되는 세금제도가 최소한의 누진성을 지니거나 어쨌든 명백히 상류층에게 역진적이지는 않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⑵ 더군다나, 최상위 소득에 얼마나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세계의 누진성을 살펴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날로 더 중요해지고 있는 상속자산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산은 소득보다 과세율이 훨씬 낮다. 이것은 내가 '라스티냐크의 딜레마'라고 부르는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노동소득과 자본화된 유산을 포함해) 일생 동안 얻는 모든 자원을 기준으로 개인들을 백분위로 분류하면, 이는 누진적인 과세를 위해 더 만족스러운 기준이겠지만, 실제로는 노동소득만을 고려했을 때보다 상위계층에서 훨씬 더 역진적인 모습의 벨 커브가 나타날 것이다.
⑶ 이 가파른 누진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미숙련 노동자들의 처지를 상당히 개선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세금제도가 더욱 누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자유무역으로 가장 적은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자유무역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누진세는 모든 사람이 세계화로 이익을 얻는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필수적이다. 점점 더 눈에 띄는 누진세의 부재는 결국 세계화된 경제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 그러나 오늘날 누진세는 지적으로(그 다양한 기능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정치적으로(조세경쟁으로 모든 유형의 소득이 일반적인 과세 원칙에서 면세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p.593
그러나 1919년부터 1922년 사이에 70퍼센트 이상의 세율을 시도한 최초의 국가는 바로 미국이었는데, 1919~1922년에는 먼저 소득에 적용했고 이후 1937~1939년데는 상속재산에 적용했다. 정부가 이처럼 특정 수준의 소득이나 상속에 대해 70내지 80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하는 주된 목표는 부가적인 세수 확보가 아니다.(이런 높은 소득 구간에서 얻을 수 있는 세수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세금의 목적은 지나치게 많은 소득과 대규모의 상속을 억제하려는 데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러한 과다한 소득과 상속을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누진적인 과세는 언제나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한 미국과 영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더 누진적인 세제를 도입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금시대에 미국의 많은 논평가는 미국이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있으며 초기의 개척정신이 이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1932~1980년을 통틀어, 즉 거의 반세기 동안 미국의 최고연방세율은 평균 81퍼센트였다.
...미국의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에 필적할 만한 혹은 그를 초과했던 유일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1940년대 영국에서 최고소득에 적용된 세율은 상속재산에 대한 최고세율과 마찬가지로 98퍼센트로 이 최고치는 1970년대에도 다시 회복되는데, 이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 기록이다.
...1938년 11월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는 1929년 출간된 상속에 관한 고전적인 저작의 개정판 서장에서 '금권민주주의plutodemocracies'와 이들을 계승한 엘리트들은 파시즘의 출현을 막지 못했다는 동료 버트란드 러셀Bertrant Russell의 견해에 동의를 표했다. 웨지우드는 "경제민주화 없는 정치적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고 확신했다. 그의 관점에서는 매우 누진적인 상속세가 그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주요한 도구였다.
p.604
구체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현상은 서로 완벽하게 관련되어 있따. 즉 최고세율이 가장 크게 인하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최고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 특히 대기업 최고위 경영진의 급여가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다. 반면 최고세율이 그리 많이 인하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국민소득에서 최고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더 완만하게 증가했다.
p.609
우리의 연구는 1980년 이전에 미국과 영국에서 적용되었던 고율의 과세와 같은 수단만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p.613
주사에 결과에 따르면, 사실상 최고소득에 매우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급여의 증가를 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추정에 따르면 선진국의 최적최고세율optimal top tax rate은 아마도 80퍼센트를 넘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소득에 대해 약 80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한다면 미국의 경제성장을 둔화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익한 (심지어 해로운) 행위를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실제로 성장의 과실을 더욱 널리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곧 도입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서 오바마의 재임 기간 내에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40퍼센트까지 인상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미국의 정치과정은 상위 1퍼센트에 포획되었는가? 이런 생각이 점점 더 미국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렇긴 해도 20세기 누진세의 역사는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과두체제oligarchy로 흘러갈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며, 미국의 미래에 관해 낙관할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누진세가 대두된 것은 부편적 참정권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전쟁 때문이었다.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의 경험은-만약 증거가 필요하다면-경제와 금융 엘리트들이 그들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위선적인 행위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이는 현재 미국의 소득계층 구조에서 선망받는 자리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몇몇 경제학자는 대중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르럴듯하게 주장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사적인 이해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급진적인 충격이 없다면, 현재의 균형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평등주의를 꿈꾸던 개척자의 이상은 이미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신대륙 미국은 바야흐로 21세기 세계화된 경제의 구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p.613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21세기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를 통제하려면, 20세기의 재정국가와 사회적 국가 모델을 재고하여 오늘날의 실정에 맞게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지난 세기의 사회-민주주의적 제도와 재정적-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을 절절히 보완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이미 앞선 두 장에서 살펴봤듯이,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세금은 끝없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고 세계적인 자본집중의 우려스러운 동학을 통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p.617
글로벌 자본세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이다. 이 세계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그와 같은 세금에 합의하는 나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p.618
내가 제안한 자본세에는 이런저런 나라에서 현재 부과하고 있는 자본세와 분명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우선 거의 모든 나라가 부동산에 과세한다. 영미권 국가에는 '재산세property tax'가 있고, 프랑스에는 토지세taxe fonciere가 있다. 이들 세금의 결점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에만 과세한다는 것이다.(금융자산은 간과되고, 부채와 상관없이 부동산의 시장가치에 대해 과세한다. 그래서 부채가 대단히 많은 사람에게도 부채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과세된다.) 게대가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단일세율 또는 그에 가까운 세율로 과세된다.
p.620
물론 조세피난처는 때로 은행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구실을 둘러댄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부가 정보를 남용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조세피난처가 은행 비밀을 지키려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고객이 납세의무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어, 조세피난처가 그 이익을 공유하는 데 있다. 분명히 이는 시장경제 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자신의 세율을 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개개인이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으로 더욱 부유해지고 단지 이웃을 희생시킨 대가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둑질이다.
p.625
누진적 소득세가 현존하고, 마찬가지로 누진적 상속세도 대부분의 국가에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누진적 자본세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실 이 세 가지 누진세는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각각은 이상적인 조세 체계에서 필수적인 주축이다. 또한 자본세를 정당화는 논리는 담세 능력과 유인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담세 능력의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매우 부유한 개인들에게 있어 소득은 종종 명확하게 규정된 개념이 아니다. 단지 자본에 대한 직접세만이 부자들의 세금 부담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p.629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여기에 탈세나 신고되지 않은 스위스 은행 계좌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조세 체계에 문제를 안겨준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소득의 단 1퍼센트 혹은 10퍼센트만 신고할 때 그것을 근거로 세금을 부과한다면, 50퍼센트 또는 심지어 98퍼센트 세율로 소득세를 물려도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문제는 선진국들에서 실제로 조세 체계가 이렇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최상위 부유층에서 (실질적인 소득과 비교한) 실효세율은 극히 낮다. 이는 부의 불평등의 폭발적인 동학을 강화하기 때문에 문제인데, 재산이 많을수록 수익도 많아질 때 특히 그렇다. 사실 조세 체계는 이런 동학을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라 약화시켜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투자신탁, 지주회사 그리고 합자회사에 투자한 부분까지 포함해 개인의 모든 소득에 과세하는 방법이다. 좀더 간편한 해법은 소득보다는 자산에 근거하여 세금을 산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해법은 개인의 재산 총액에 직접 누진세를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산에 비해 과세 대상 소득이 지나치게 적은 개인들의 소득세에 더해 자본세를 부과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세를 선호하는 또 다른 고전적인 주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유인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자본세가 한 사람의 자본총량으로 최고의 수익을 추구하게 하는 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재산에 대한 1~2퍼센트의 세금은 자신의 자본으로 한 해에 10퍼센트를 벌어들이는 기업가에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이다. 반대로 이는 자산을 기껏해야 한 해 2~3퍼센트의 수익을 내는 투자 수단에 기꺼이 맡겨두는 사람에게는 매우 무겁다. 그래서 이 논리에 따르면 자본세의 목적은 자신의 재신을 비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 자산을 팔도록 하고 그리하여 그 자산이 확실히 더 역동적인 투자가들의 손에 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니지만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자본총량만을 근거로 부과하는 세금은 적자 기업에 지나친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손실을 보는 시기에도 수익을 냈던 시기만큼 세금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조세 체계는 (자본총량에 대한 과세를 지지하는) 유인의 논리와 (자본에서 나오는 수익의 흐름에 대한 과세를 지지하는) 보험의 논리를 절충한 것이다.
p.631
다음 논점은 중요하므로 강조하고자 한다. 오늘날 유럽에서 민간의 부가 매우 높은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자산에 대한 적당한 연간 누진세로도 상당한 세수를 창출할 수 있다. 예컨대 100만 유로 이하의 부에 대해서는 0퍼센트, 100만 유로와 500만 유로 사이의 부에는 1퍼센트, 500만 유로 이상의 부에 2퍼센트의 부유세를 매긴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에 이를 적용한다면 인구의 약 2.5퍼센트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유럽 GDP의 2퍼센트와 맞먹는 세수를 가져올 것이다. 그 높은 수입에 놀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오늘날 유럽에서 민간의 부가 GDP의 5배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재산의 대부분은 최상위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자본세만으로 사회적 국가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조달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창출되는 추가적인 세수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들은 특히 '사업자산'에 많은 공제를 허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상장회사와 비상장회사의 거의 모든 대규모 지분이 공제 대상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본에 대한 누진적 세제에서 알맹이를 많이 빼버리는 것으로, 현행 세제가 위에서 설명한 것에 비해 왜 그토록 적은 세수를 창출하는지를 설명해준다.
p.633
정치적 대응 중 가장 일반적인 한 가지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기독교 및 이슬람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 전통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시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으므로 이자는 기본적으로 부를 한없이 증대시킬 수 있는데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런 이자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자'에 해당되는 그리스어(tocos)가 '어린아이'를 의미한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지적한 것은 무한한 부가 초래하는 위험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더 많은 돈을 "낳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장률이 낮거나 심지어 제로에 가까운 세계에서 인구 및 생산량이 대대로 거의 동일할 때에 이 '무제한성'은 특히 더 위험해 보인다.
불행하게도 이자놀이를 금지하려는 시도들은 흔히 비논리적이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불법화하는 조치는 보통 특정한 유형의 투자와 특정한 상업 혹은 금융활동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그들은 일반적인 자본수익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소유자가 수익을 정당화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자본이 수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원리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그보다 사람들은 무한한 축적을 경계했다.
...이런 점에서 토지자본은 대단히 안심할 만한 것이었는데 한 해 또 한 해, 한 세기 또 한 세기가 갈 때마다 스스로 재생산만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와 19세기의 다른 많은 사회주의자가 제시하고 20세기에 소련과 다른 곳에서 실행된 자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훨씬 더 급진적이며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더 일관성 있는 것이었다. 산업, 금융, 산업자본뿐만 아니라 토지와 건물을 포함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약간의 개인 보유 토지와 작은 협동조합은 제외하고) 폐지함으로써 소련의 실험은 모든 사적 자본수익을 한꺼번에 없애버렸다. 이에 따라 고리대금업의 금지도 일반화되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에게는 생산물 중 자본가들이 전유하는 몫을 의미했던 착취율이 사적 자본의 수익률과 함께 제로로 떨어졌다. 자본수익률이 제로가 되면서 사람들(또는 노동자들)은 마침내 축적된 부의 멍에와 함께 그들의 사슬을 벗어던졌다. 현재 과거에 비해 더 중요해졌다. 이들에게 r>g라는 부등식은 나쁜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되었는데, 특히 공산주의가 성장 및 기술 진보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 그러했다. 불행히도 이 전체주의적 실험에 휩쓸린 사람들에게 문제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가 자신의 노동력밖에 팔 것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확고히 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는 또한 수백만 명의 개인의 행동을 조정하는 데 유용한 역할을 담당하며, 이는 이 두가지 없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소련식 중앙집권적 계획이 야기한 인류의 재앙이 이런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자본에 대한 세금은, 민간자본과 그것의 수익에서 발생하는 영원한 문제에 대한 덜 폭력적이면서도 더 효율적인 대응이 될 것이다. 개인의 부에 누진적 세금을 물리는 것은 사유재산과 경쟁의 힘에 의지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를 재천명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자본세는 21세기의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에 적용되어야 할 새로운 아이디어다.
p.637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무역주의는 아주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실행될 때 그 자체로 번영의 원천의 되거나 부를 창조하지는 못한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국민에게 생활수준을 크게 높여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이 길을 선택하는 국가는 정말로 실망스런 결과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보호무역주의는 r>g라는 부등식 또는 점덤 더 소수의 사람들 손에 부가 축적되는 경향을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p.642
자본세는 자본통제의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며 유럽의 비교우위에도 더 잘 맞는다.
p.645
이민을 통한 재분배는 문제를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새로운 형태의 규제, 즉 소득과 자본에 대한 누진세를 갖춘 사회적 국가에 대한 요구를 없앨 수는 없다.
p.648
정부가 국가재정을 마련하는 주된 방식은 세금과 부채 두 가지다. 일반적으로 공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과세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 부채는 상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은 정부에 빌려줄 자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공익적 관점에서는 부자들에게 자금을 빌리는 것보다 부자들에게 과세를 하는 것이 보통 더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고 나쁜 여러 이유로 인해 정부는 때때로 부채를 지고 (이전 정권 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면) 부채를 쌓는 수단에 의지한다. 물론 지금 세계의 부유한 국가들은 외견상 끝없는 부채위기에 휘말려 있다.
p.649
나는 대규모 공공부채를 감소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자본에 대해 예외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임을 제시했다. 이는 단연코 가장 투명하고 공정하며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긴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누진세에 비해 매우 불완전한 대체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 못한 몇몇 2차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첫 번째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백만의 소액 예금들의 가치가 크게 줄어들었고, 이는 1950년대 노년층의 빈곤 문제를 지속적으로 악화시켰다. 독일에서는 1923년 초에서 연말까지 물가가 1억 배나 오르기도 했다.
...인플레이션의 두 번째 문제는 일단 인플레이션이 고착되고 예측 가능해지면 대부분의 수많은 바람직한 효과는 사라진다는 데 있다. 특히 정부에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들은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할 것이다.
p.655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후대의 자손들에게 수치스런 빚더미를 남겨줄 상황에 처했느니, 이런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지금처럼 부자인 적이 없었다. 반면 이 막대한 국부가 대단히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현실이다. 민간의 부는 공공의 빈곤 위에 서 있는데, 이것이 야기한 특히 안타까운 결과는 우리가 현재 고등교육에 투자한 것ㄱ보다 공공부채의 이자를 지불하는 데 더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684
[결론]
이 연구의 종합적인 결론은 사유재산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특히 지식과 기술의 확산을 통해 격차를 좁혀가는 강력한 수렴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는 또한 민주사회와 그 사회의 기반이 되는 사회정의의 가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될 강력한 양극화의 힘도 지니고 있다.
p.689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물론 민간의 자본수익률을 성장률 이하로 낮추기 위해 자본소득에 대해 충분히 무거운 세금을 물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차별적이고 가혹하게 세금을 물리면 자본축적의 동력이 죽고 그에 따라 성장률도 더 낮아질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기업가들이 나오지 않을 터이므로 기존 기업가들이 더 이상 자본소득자로 바뀔 기회도 없을 것이다.
올바른 해법은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인 자본세다.
p.690
문제는 이런 해법, 즉 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높은 수준의 국제 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r>g라는 부등식은 시장의 '불완전성'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을 통해 바꿔놓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위험은 현실이지만 진정한 대안은 아직 없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p.691
나는 '경제과학economic science'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이 표현은 경제학이 다른 사회과학 분야보다 더 높은 과학적 지위를 얻었다는 것을 내비치기 때문에 대단히 오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 표현은 다소 낡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경제학과 다른 사회과학 분야를 구분하는 유일한 차이가 경제학은 정치적이고 규범적이며 도덕적 목적을 지닌다는 데 있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p.692
다른 모든 지식인과 시민처럼 사회과학자들도 공개적인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은 정의와 민주주의, 세계평화와 같은 숭고하지만 추상적인 원칙들을 들먹이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것이 사회적 국가든, 조세 쳬계든, 아니면 공공부채든 간에 특정 제도와 정책들에 대해 선택하고 주장해야 한다. 모든 이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정치적이다. 이 세계는 한편에 정치적 엘리트가 있고 다른 한편에 일단의 논평가와 또 책임이라고는 4~5년에 한 번씩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것밖에 없는 구경꾼이 모인 곳이 인다. 나는 학자와 시민들이 도덕적으로 별개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전자는 수단에, 후자는 목적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믿는다. 이런 관점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나에게는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
p.693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계층의 소득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한 유용한 경제사, 사회사를 쓸 희망은 없다."
p.694
18세기나 19세기를 연구할 때는 물가와 임금, 또는 소득과 재산의 변화가 정치나 문화의 논리와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율적인 경제논리를 따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를 연구할 때는 그런 환상이 곧바로 깨져버린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나 자본/소득 비율의 곡선을 언뜻 보기만 해도 정치는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경제적 변화와 정치적 변화는 떼려야 뗄 수 없게 얽혀 있어서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제적 하부구조와 정치적 상부구조라는 극히 단순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버리고 국가, 조세, 부채를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p.696
'temp > scrap_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야기 세계사 | 김경묵, 우종익 (1) | 2016.09.10 |
|---|---|
| 도덕교육의 파시즘 | 김상봉 (0) | 2016.09.10 |
| 투명사회 | 한병철 (0) | 2016.09.10 |
|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0) | 2016.09.10 |
| 1984 | 조지 오웰 (0) | 2016.09.10 |